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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4
      칼럼 [칼럼-김만권][경향신문 2022.06.13.] 팬덤에서 우정으로

      팬덤에서 우정으로


      “사랑은 이성을 두려워한다. 이성은 사랑을 두려워한다. 둘 다 상대방 없이 견디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문제가 생긴다. 이것이 가장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사랑이 처한 곤경이자 이성이 처한 곤경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개인화된 사회>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대다수 사람은 안다. 사랑과 이성의 소통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사랑은 무엇보다 마음으로 소통하고, 그 마음에는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자기 나름’의 이유를 이성은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때로 사랑은 자기 나름의 이유로 남들에게 뻔히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성은 그래서 사랑이 눈을 멀게 한다고 여긴다. 사랑에게도 할 말은 있다. 우리 마음에도 이성 못지않은 나름의 질서와 논리가 있다는 것이다. 관계가 이렇다 보니 사랑은 이성에, 이성은 사랑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뜬금없이 사랑과 이성을 꺼내는 이유는 요즘 사회적 논란이 된 ‘팬덤정치’ 때문이다. 팬덤정치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유형의 정치인데 디지털 기술이 만든 네트워크의 확산에 기반을 둔다. 디지털 기술은 유권자와 대표자의 거리를 그 어느 때보다 좁혀 놓고 있으며 이로 인해 대표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유권자들의 압박에 노출돼 있다. ‘참여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의사결정과정에 유권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집단적 의사결정과정에 나타나는 결정적 문제가 있다. 대체로 강경한 태도를 지닌 이들의 의견이 집단 내에 지배적 영향을 발휘하는 경향 때문이다. 무엇보다 강경파의 의견이 단호할수록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 카스 선스타인은 <사회에 왜 이견이 필요한가?>에서 이렇게 강경한 목소리가 국익이나 사명감 같은 대의를 내세울 때 의사결정에서 더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견의 견제 없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구성원 상호 간 소속감이나 유대감이 강한 경우엔 극단화가 더 심해진다. 팬덤정치는 정확하게 이런 위험에 노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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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보기: [김만권의 손길] 팬덤에서 우정으로 - 경향신문 (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