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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3
      인터뷰 [칼럼-김지은][프리즘 2021.08.03] 얼기설기 얽힌 관계

      얼기설기 얽힌 관계 

      김지은|문학 연구자
        샤워볼을 바꿨다. 샤워볼 교체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변 사람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에 나만 아는 작은 일상의 변화고 소소한 변화가 불러오는 작은 설렘이다. 여태껏 써온 익숙한 샤워젤이 조금 남아 있지만, 괜스레 새로운 샤워젤을 꺼내어 샤워볼 위에 작은 원을 그리며 쭉 짜본다. 여름을 닮아 산뜻한 로즈마리향이 욕실에 퍼져나가고 내 몸을 감싸리라 기대해 보지만, 거품이 나지 않는다. 겹겹이 뭉쳐 만들어진 샤워볼은 샤워젤을 흡수하기에 급급하고 자기 밖으로 거품을 뱉어내지 않는다. 거품이 없기에 향의 퍼짐도 없다. 샤워볼에 기댄 작은 설렘은 이내 성가심으로 변모한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다시 한 번 샤워볼에 물을 적셔 그 안에 숨겨진 젤이 몽글몽글한 거품과 풍부한 향으로 모습을 드러나길 바라며 비벼 보지만 큰 소득은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샤워볼의 간격이 너무 촘촘하다. 망 사이사이는 있는 힘껏 서로에게 붙으려는 듯 촘촘하다 못해 빽빽하다. 오밀조밀 엮인 샤워볼은 어떠한 잡아당김에도 흐트러짐 없는 모양새를 유지하지만, 바로 그 견고함이 망과 망 사이에 물과 젤과 거품과 향의 흐름을 방해한다. 자기 안으로 빨아들인 것을 더 깊이 침잠할 뿐 정작 뱉어내지는 못하는 이 샤워볼은 실패작이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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