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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9
      [이달의 돌봄인문학 텍스트] Puig de la Bellacasa, María. Matters of Care. Speculative Ethics in More Than Human World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7)

      María Puig de la Bellacasa의 책 Matters of Care는 '돌봄(care)'에 대한 기존의 통념에 도전하며, 테크노사이언스와 자연문화의 인간 너머의 세계를 사유하기 위한 윤리적·정치적 의무로서 돌봄의 중요성을 탐구한다. 이 책은 돌봄이 지니는 다양한 의미와 실천, 그리고 이를 둘러싼 긴장과 모순을 포착하며 돌봄을 단순한 감정이나 윤리적 태도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돌봄을 지배적 질서를 교란하고 대안적 관계를 가능케 하는 실천으로 바라본다. 특히 돌봄의 개념이 여성의 경험을 본질화하거나 이상화할 위험성을 경계하며, 보다 확장된 의미에서 돌봄을 사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더 나은 공존의 방식을 모색할 때, 돌봄을 사유의 스펙트럼 안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한다.

      책의 1부 "지식 정치"에서는 과학기술학(STS) 내 '사물의 정치'와 '관심사(matters of concern)' 개념을 비판적으로 계승한다. 특히 브루노 라투르의 '관심사' 개념을 확장하여, 사회기술적 집합체를 '배려의 문제(matters of care)'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이때 배려는 사물의 구성 과정에 윤리정치적 효과를 부여하며, 배제와 고통에 주목하게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돌봄을 인간의 배타적 행위로 보는 관점에 반박한다. 돌봄이 자연계에서 순환하는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살아있는 돌봄의 그물을 구성하는 행위성과 공동체에 대한 고려를 비인간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하고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모두를 아우르는 관계윤리를 모색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2장과 3장에서는 사유 및 인식 과정 자체를 보살핌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해러웨이의 '함께-사유하기', '내부로부터의 반대', '~을 위한 사유' 개념을 통해, '보살피는 사유'를 상호의존적 세계 속 집단적 사유의 모순적 요구사항으로 규정한다. 또한 '접촉'과 '햅틱'의 감각을 매개로, 사유의 물질성과 그것이 촉발하는 효과를 조명한다. 이는 사유와 삶에서 호혜성 문제를 제기하며, 보살핌이 개인이 아닌 집합적 역량에 의해 유지되는 관계적 책무의 그물망임을 시사한다.

      2부 "탈생태학적 시대의 사변적 윤리"에서는 '자원'으로 환원되어 온 자연 세계와 맺는 우리의 관계를 전환할 잠재력을 지닌 일상의 생태학을 주목한다. 먼저 4장에서는 순환농업 운동의 실천을 통해 자연문화적 보살핌의 윤리를 고찰한다. 이는 개인적 도덕이 아닌 에토스의 변화에 관한 것으로, 생명정치학의 인간중심성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체의 번영을 모색하는 대안적 생명정치를 제안한다. 5장은 토양을 둘러싼 과학적 인식론과 생태학적 실천의 접점에 주목한다. 지배적인 인간-토양 관계는 토양의 비옥도를 생산수요에 맞추어 왔지만, 이제 토양을 살아있는 세계로 개념화하는 대안적 실천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인간중심적 시간성을 교란하며, 토양을 보살피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저자는 돌봄을 순진무구한 행위로 간주하지 않는다. 돌봄의 실천은 종종 긴장과 모순, 양가성을 내포하며, 때로는 온정주의나 온건함으로 위장된 지배와 통제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나은 공존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돌봄을 사유와 실천의 영역에 편입시켜야 한다. Matters of Care는 이 지점을 질문하며 열어놓는다. 이 책은 쉬운 해답을 주기보다, 우리가 제기해야 할 더 많은 질문들로 촉발한다.

      이처럼 Matters of Care는 돌봄의 윤리와 정치에서부터 경험적 연구,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에 이르는 학제적 논의를 아우른다. 나아가 행위성을 인간 너머로 확장함으로써, 세계를 보다 넓게 사유할 때 돌봄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어떻게 전환되어야 하는지를 제안한다. 이 책은 테크노사이언스와 자연문화라는 인간 너머의 영역에서 돌봄과 그것이 함의하는 윤리적·정치적 지평을 사변적으로 모색하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