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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5
      칼럼 [칼럼-김재인][광주일보 2022.11.15.] 학문의 영어 편식과 예속이 심각하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생산된 지적 담론을 오래 공부해 온 나로서는 영어 학계에서 논의된 혹은 논의되고 있는 담론을 접할 때 어색함과 더불어 시대착오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페미니즘’과 ‘정체성 정치’가 대표적 분야다. 나름으로 진보를 표방하며 전개되는 논리고, 또 고유한 역사가 있을 터이니, 알려고 시도해 보기는 한다.

      내가 문제로 느끼는 대목은, 특히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 비영어 담론을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무시하거나 혹은 무지하다는 점이 드러나는 때다.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사례가 많다. 가령 들뢰즈와 과타리가 ‘n개의 성’을 말한 것이 1972년 출간한 ‘안티 오이디푸스’에서였고, 유사한 작업은 들뢰즈가 이미 1964년 출간한 ‘프루스트와 기호들’에서도 진행되었다.

      지금부터 50년 전에 이미 “한 주체 안에 있는 n개의 성”을 분석하고 “각자에게 자신의 성들을” 공식으로 내세운다. 그런데 너무 급진적이어서일까? 내가 접하는 영어 기반 담론에서는 저 논의를 찾기 어렵다. 아, 물론 영어 담론을 근거로 삼는 대다수 한국어 담론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틀렸거나 후져서, 아니면 비현실적이거나 한국 맥락에 맞지 않아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져볼 수 있다. 하지만 저 논의는 아무리 봐도 더 현실적이고 더 한국 맥락에 맞는다. 그래서, 읽지 않아서, 혹은 읽을 기회가 없어서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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