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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9
      칼럼 [칼럼-김만권][한겨례 2022.03.27.] 갈라진 마음
      갈라진 마음

      1993년 미국의 지성을 대표하던 존 롤스가 <정치적 자유주의>를 출간했다. 이 정치철학서의 질문은 명료했다. ‘분열된 가치는 민주주의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시장의 등장이란 역사적 맥락이 겹치며 서구사회에 확립된 ‘가치다원주의’라는 삶의 조건을 어떻게 다루어낼지를 묻고 있었다. 롤스의 입장은 명확했다. ‘이제 서구의 정치체는 하나의 가치 아래 결속될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니다. 이제 이곳은 구성원들이 여러 다른 이해관계에 얽혀 살아가는 ‘사회’다. 더는 우리가 하나일 수 없다는 이 현실을, 사람들이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래도 살아갈 만한 것이라 여기게 하는 것이 정치철학의 임무다.
      90년대 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도대체 롤스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감이 서지 않았다. ‘우리’라는 말이 지배적인 국가에서 살다 보니 ‘때로 서로 화해조차 할 수 없는 가치다원주의’라는 조건이 무엇인지부터 체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둔감한지 몰라도 보통 사람들에게 우리의 균열은 명백히 이데올로기적인 단순한 경계였다. 아무리 깊어도 메워야 하는 균열의 전선이 명료했기에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가 도래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이런 이유로 공들여 공부했지만 ‘정치적 자유주의’는 그다지 우리에겐 쓸데가 없다고 생각했다.
      20대 대선이 끝났다. 20년이 지나 이 책을 다시 펼쳤다. 난감한 질문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갈라진 마음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그 갈라진 마음이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걸까?’ 적어도 내게 20대 대선은 기이한 선거였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과 양대 공당이 세대와 젠더를 버젓이 가르고 혐오, 차별, 분열을 아무렇지도 않게 조장하고 있었다. 이주민 및 외국인 혐오는 덤이었다. 심지어 언론도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이 선거를 지배하는 것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갈라진 마음’이었다. 지독하게 갈라진 마음이 지배한 선거였기 때문일까? 정당한 경쟁에서 볼 수 있는, 예의로라도 보여야 할 승자에 대한 축하와 기대도, 패자에 대한 위로와 격려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선거 이후 있어야 할 화해와 치유의 시간이 증발한 듯 보였다.

      (이하 생략)
      원문보기: 갈라진 마음 (naver.com)